한옥에 살어리랏다
한옥호텔, 한옥 갤러리, 한옥 레스토랑, 한옥 치과에 이르기까지,
요즘 한옥은 오래되고 낡은 스타일이 아닌 편안함과 멋스러움으로 재탄생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한옥의 귀환'을 이끈 건축가 황두진 씨를 직접 만나, 한옥만의 매력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한옥이 요즘처럼 멋있는 건축물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던가.
독특한 조형미를 자랑하는 스페인 빌바오의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미국 시카고 밀레니엄파크의 ‘구름문’쯤은 돼야 세련돼 보이던 TV 광고 배경이 격조 있는 한옥 풍경으로 바뀌고, TV 리얼리티 프로그램 촬영지로도 한옥이 자주 등장한다. 고급 한옥 숙박시설이 인기를 끌더니 한옥호텔도 등장했다.
연구소와 골프장 클럽하우스, 한의원과 치과 건물, 출판사 사옥, 갤러리, 공방, 식당 등 각종 형태로 진화 발전하면서 주목을 받는다. 사진기를 들고 나선 젊은이들과 국내외 관광객들은 무리 지어 한옥마을 골목을 누빈다.
그만큼 한옥을 멋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다. 디자인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30대 가운데 한옥에서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은 현대 한국건축의 테마로서 한옥의 미래를 밝게 한다. 한옥이 고루하고 남루한 구시대의 유물 이미지를 벗어던진 것이다.
불편하고 유지 관리가 힘든 ‘한옥’이 이렇게 품격 있는 스타일의 상징으로 복귀하는 데 일조한 인물로 건축가 황두진을 꼽을 수 있다. 북촌에서도 각별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한옥 무무헌, 집운헌, 동인재, 쌍희재, 취죽당, 가회헌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특히 가회동 무무헌은 ‘한옥의 귀환’을 이끈 기폭제 역할을 하며 현대인이 좋아하는 편리함과 멋스러움이 안목 깊은 절제미로 응축된 새로운 한옥의 전형을 창출해냈다.
2001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열린책들 사옥에서 시작된 그의 건축 작업은 청운동, 가회동, 재동, 낙원동, 옥인동 등 사대문 안에 집중돼 있다. 황두진을 자칭 타칭 ‘동네건축가’라 부르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한옥을 문화재나 전통가옥이 아닌 한국 현대건축의 테마 가운데 하나로 보는 황두진에게 ‘동네’라는 개념은 각별하다.
미국 예일대 건축대학원 재학 시절 화두로 건네받은 ‘동네’ 개념을 서울로 돌아와 건축 작업으로 풀면서 그는 주변의 것들에 주목했다. 우리 시대, 우리 땅, 우리 환경, 우리 생각, 우리 생활방식에 가장 어울리는 주거공간으로서의 한옥을 탐구하고 만들어갔다.
문화의 공간적 집약체로서의 한옥 이미지에 황두진은 스타일과 가치를 더했다. 한옥의 모습은 그가 몸을 만들고, 목소리를 다듬고, 영상을 연출하면서 더욱 더 세련되게 표현됐다. 그의 작업 결과에 한국인들은 자부심을 느꼈고, 외국인들은 환호했다.
그는 한옥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4월엔 하버드대학원과 워싱턴 스미소니언미술관, LA 주립미술관, UCLA대학원, 시애틀 워싱턴주립대 등에서 미국 순회강연을 했다. 6월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옥의 건축미를 들려주었다. 그의 강의를 접한 미국 현지 건축가, 학자, 전문가들은 전통의 현대화 혹은 보편성을 획득한 지역색이라고 격찬했다.
그간 역풍도 거셌다. 한옥은 현대적 시설을 받아들이며 눈부신 변신을 거듭했지만, 한옥에 대한 사람들 생각은 요지부동 완고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건 한옥이 아니니 제발 짓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고, 허가 거부도 있었고, 한옥을 모르는 사람이 한옥으로 이름을 얻는다는 질시도 있었다.
‘동네건축가’라는 표현만 해도 그렇다. 말 그대로 동네 건축가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걸 부르는 사람도 불리는 사람도 다 알고 있다 해도, 동네 건축가라는 것이 지역화가 곧 세계화의 경쟁력이라는 담론을 이미 담고 있는 표현이라 해도, 그 한편에는 그래봤자 좁디좁은 동네 한구석에서만 통하는 동네 건축가라는 야유가 숨어 있다.
이에 대해 황두진은 개의치 않는다고 했다. 몰이해가 불편하기는 하지만 그가 하고자 하는 건 한옥의 복원이 아니라 더 아름답고 더 편리하고 더 쾌적하고 더 우리와 닮은 한국의 현대건축이기 때문이다. 그가 꿈꾸는 한옥은 우리 동네에 있어야 가장 돋보이지만, 이국땅에 갖다 놓아도 그 매력을 잃지 않는, 우리 시대를 사는 이들을 위한 주거공간이다.
< * 이 글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행하는 위클리 공감(2009.7.8)에 실렸습니다.>